중용(中庸)이란 가운데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다소 어려운 말입니다.
이 때의 가운데란 말은 수학적 측면에서, A와 B사이의 거리의 절반인 지점이란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또한 넘치지도 않고 모지라지도 않는 역동적인 균형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순간이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균형이어야 합니다.
또한 조직내에서 양쪽 의견의 갈등이 생겼을 때, 그저 방관만 하는 경우는 중용이 아닙니다. 이 때 명확하게 판단하여 자기의 주장을 올바르게 내세울 수 있어야 중용의 도리를 지켰다고 할 것 입니다.
그런데, 옛적 중국의 지식인 공자님조차 중용적인 삶이 결코 만만치 않다고 하였답니다. 즉 '천하국가도 고르게 다스릴 수 있고, 높은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하얀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만큼은 만만치 않다'고.. 아마도 의미는 알겠는데 실제 실천이 어렵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아뭏든 아래 박재희 교수님의 중용에 대한 강의를 들으니 이제야 겨우 중용의 의미를 약간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저 자신 또한 살아가면서, 중용이란 기준을 지켜가면서 현재의 처지를 잘 파악하면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 빠르게 판단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껴봅니다.
아래를 클릭하면, 이 강의를 동영상으로 보고 듣고 즐길 수 있습니다. 한문공부에도 적잖이 도움이 됩니다. http://www.nethyangki.net/8425 안녕 하십니까 박재희 입니다. 왜 옛날 어르신들이 늘상 하시는 말씀 중에 ‘중용을 지켜라!’는 이야기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자기자리와 분수를 지키며 살라는 연륜 있는 어른들의 무게 있는 충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늘 중용을 강조하지만 ‘그 중용적 삶이란 정확한 무엇이냐?’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울러 중용적 삶이란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 방식이란 의미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습니다. 12세기에 성리학의 완성자인 주자는 중용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中)은 치우치지도 않고(不偏; 불편), 어디에 의지하지도 않고(不倚; 불의)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다(無過不及; 무과불급)! 용(庸)은 언제나라는 평상(平常)이다.’(中者는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이오 庸은 平常也라) (중자는 불편불의무과불급지명이오 용은 평상야라) 어느 체조 선수가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고 평형을 이루고 있는 그 모습 속에는 정지된 평형이 아니라 역동적 평형이 느껴지며, 일시적 균형이 아니라 지속적인 균형이 떠올려 집니다. 중용은 간단히 말하면 역동적이며 지속적인 평형입니다. 중용의 삶으로 말하면 하루 정도 중용의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 삶을 중용의 인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늘 평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비로소 중용의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중용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중용이란 A와 B의 수치적이거나 기계적인 중간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부인의 고부 갈등에 중용을 지킨다고 어머니가 계신 안방도 아니고 부인이 있는 부엌도 아닌 거실에 있는 상태가 중용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중용은 모든 개인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수학적인 중간이 아니라 개인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역동적으로 그 기준이 움직이는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수치입니다. 중용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물러설 줄 아는 진퇴(進退)를 아는 것이 중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조직 내에 옳지 못한 결정이 내려질 때 중용을 지킨다고 가만히 침묵한다거나, 조직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불의에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는 것 역시 중용은 아닙니다. 중용의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가 시중(時中) 사상입니다. 일명 상황(時)의 중(中)입니다. 세상은 무한히 변화합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중(時中)입니다. ‘수시이처중야(隨時以處中也)라!’ ‘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확한 중을 찾아 처해야 한다!’ 여기서 수시(隨時)는 상황의 변화입니다. 처중(處中)은 그 상황분석에 따른 정확한 판단과 실행입니다. 공자는 군자야말로 중용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며 소인은 중용에 반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君子는 中庸이요 小人은 反中庸이라) 군자와 소인은 지위나 학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중용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에 달렸다는 것이지요. 중용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얼마나 중용의 룰을 실천하셨습니까? 아침에 식사는 적당히 하셨습니까? 가족이나 직원과의 관계에서 정확한 중(中)은 찾아 내셨습니까? 오늘 저녁 혹시 중용에 반하는 스케쥴은 없으십니까? 공자는 중용적 삶의 어려움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천하국가도 고르게 다스릴 수 있고, 높은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하얀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만큼은 만만치 않다(天下國家도 可均也요, 爵祿도 可辭也요, 白刃도 可蹈也나 中庸은 不可能也니라).’ (천하국가도 가균야요, 작록도 가사야요, 백인도 가도야나 중용은 불가능야 니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천하의 높은 자리도 사양할 수 있는 의리도, 시퍼런 칼날을 밟을 수 있는 용기도 중용하기 보다는 쉽다는 이 말 속에 중용의 실천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다만 어떤 모습으로 살던 그 삶의 기준은 중용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며, 변화하는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처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역동적인 변화에 정확한 판단과 지속적인 실행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중용을 실천하는 리더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넷향기, 동양고전 철학자 박재희 교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중용(中庸)이란 말이 있습니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공급(孔汲), 일명 자사자(子思子)가 쓴 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중용을 영어로는 golden mean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영어 단어 속에는 mean 즉 ‘중간’이라는 정지되어 있는 수치적 개념의 중용을 강조하고 있어 동양의 역동적인 중용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여, 중용(中庸)이란 경전은 어떤 책인가..
중국 유교 경전의 하나로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오경(五經)이라는 것은 삼경(三經)이라 불리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譯經)』에 『예기(禮記)』와 『춘추(春秋)』를 더해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원래 『중용(中庸)』은 『대학(大學)』과 더불어 『예기』 49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을 송(宋)대 주자(朱子 : 朱熹)가 이들을 따로 뽑아내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아울러 '사서'(四書)라 일컫고 유가 경전의 필독서로 장려하면서 송학(宋學)의 주요 교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不偏不倚),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無過不及)를 말한다.
중은 '정중(正中)'이라고도 하여 바름을 뜻하기도 하고, 최고의 이상 경지를 지시하기도 한다.
'용(庸)'의 의미에 대해서는 '평상(平常)'으로 보는 견해와 '항상(恒常)'이라는 주장, '용(用)'이라는 설로 엇갈린다.
주자에 따르면 용(庸)은 평상을 뜻하지만, 정약용은 이를 항상, 즉 일관된 지속성으로 해석했다.
주희의 해석이 진리의 일상성·범용성을 강조한다면, 정약용의 해석은 실천의 지속성을 중시한 것이다.
왕부지(王夫之)는 용을 '用'으로 해석하여, 중용을 '中之用'으로 해석한다.
세 학자의 용의 개념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지만 각기 나름대로 해석의 경전적 근거가 있으므로 어느 한쪽만이 전적으로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용사상은 고대로부터 발전해 온 동아시아의 전통 사상이지만, 특히 유가를 학문적으로 정립한 공자(公子)에 의해서 크게 발전되었다. 공자에 의해 중용은 삶의 원리이자 사고의 기본 논리로서 사상적 틀이 확립되었다.
삶 또는 행동의 원리로서의 중용은 공자 자신의 행동 원리이자 교육 방법의 원리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군자는 천하를 살아감에 있어서 절대 긍정도 하지 않고, 절대 부정도 하지 않고, 오직 올바른 의(義)에 따라 행위 한다."고 하였다.
또한 이상적 인간상은 행위시에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소극적이지 않고 대립적인 특성들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획일적 배타적 동일성을 고집하지 않고(不同)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다양성 속에서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 게시글 어떠셨나요?
이 게시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혹 이 게시글이 마음에 드시거나 만족하면 아래 추천버튼[view on] 손가락에 클릭한번 부탁드리오며,
댓글도 남기시면,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되겠습니다.
추천하신 분 댓글 주신분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댄스 이론 및 경험 > 리듬짝난 이론및 경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 잔발난[리리모 130701-마카홍의 생각] 사교춤 종합 운동장 (0) | 2014.01.30 |
|---|---|
| [스크랩] *** 리듬짝난[리리모 130708-마카홍의 생각] 리듬을 여유있고 맛갈나게 타는 방법 (0) | 2014.01.30 |
| [스크랩] *** 종합적인 견해 (0) | 2013.06.20 |
| [스크랩] *** 졸라 궁금 해서리 (0) | 2013.06.20 |
| [스크랩] *** 시간이 흐르면서 (0) | 2013.06.18 |